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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05회 제갈 무후가 비단주머니에 미리 계책을 준비하고 위나라 군주가 승로반을 떼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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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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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一百五回 武侯預伏錦囊計 魏主拆取承露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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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회 제갈 무후가 비단주머니에 미리 계책을 준비하고 위나라 군주가 승로반을 떼어내다.
 
 
3
卻說楊儀聞報前路有兵攔截,忙令人哨探。回報說魏延燒絕棧道,引兵攔路。儀大驚曰:“丞相在日,料此人久後必反,誰想今日果然如此!今斷吾歸路,當複如何?”費禕曰:“此人必先捏奏天子,誣吾等造反,故燒絕棧道,阻遏歸路。吾等亦當表奏天子,陳魏延反情,然後圖之。”薑維曰:“此間有一小徑,名槎山,雖崎嶇險峻,可以抄出棧道之後。”一面寫表奏聞天子,一面將人馬望槎山小道進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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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 양의는 앞길을 어떤 군사들이 가로막는다는 보고를 듣고, 황망히 사람을 시켜 정탐하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위연이 잔도를 불태워 끊고 군사를 이끌고 길을 막고 있다고 했다. 양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5
“승상께서 생전에 이 자가 먼 훗날 틀림없이 반역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누가 오늘 과연 이렇게 할 줄을 생각이나 했겠소? 이제 우리의 귀로를 끊었으니, 어찌해야겠소?”
 
6
하니, 비위가 말하기를,
 
7
“이 자가 틀림없이 먼저 천자께 우리가 반란을 일으킨다고 무고하고 잔도를 불태워서 우리의 귀로를 막은 것이오. 우리도 역시 천자께 위연이 역심을 품은 것을 상주한 뒤에 그를 도모해야겠소.”
 
8
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9
“이 사이에 지름길이 하나 있소. 이름이 차산인데 비록 기구하고 험준하지만 잔도의 뒷쪽으로 우회할 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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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양의가) 한편으로는 천자께 표를 써서 아뢰면서, 한편으로는 인마를 차산의 지름길로 출발하게 했다.
 
 
11
且說,後主在成都,寢食不安,動止不寧;夜作一夢,夢見成都錦屏山崩倒;遂驚覺,坐而待旦,聚集文武,入朝圓夢。譙周曰:“臣昨夜仰觀天文,見一星,赤色,光芒有角,自東北落於西南,主丞相有大凶之事。今陛下夢山崩,正應此兆。”後主愈加驚怖。忽報李福到,後主急召入問之。福頓首泣奏丞相已亡;將丞相臨終言語,細述一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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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후주(유선)는 성도에서 먹고 자는 것이 불안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편했다. 밤에 꿈을 꾸니 꿈속에서 성도의 금병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깨어나 앉은 채 아침까지 기다려서, 문무 관료를 조정으로 불러모아 해몽을 하게 했다. 초주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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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어젯밤 천문을 우러러 관측하니, 한 별이 붉게 빛나며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졌습니다. 승상에게 매우 흉한 일이 일어날 징조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산이 무너지는 꿈을 꾸셨다니 참으로 이 징조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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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후주가 더욱 놀라고 두려워하는데 홀연 이복이 왔다고 알렸다. 후주가 급히 불러들여서 그에게 물으니, 이복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승상이 이미 별세했음를 알리고 승상이 임종하며 남긴 말을 자세히 고했다.
 
 
15
後主聞言大哭曰:“天喪我也!”哭倒於龍床之上。侍臣扶入後宮。吳太後聞之,亦放聲大哭不已。多官無不哀慟,百姓人人涕泣。後主連日傷感,不能設朝。忽報魏延表奏楊儀造反,群臣大駭,入宮啟奏後主,時吳太後亦在宮中。後主聞奏大驚,命近臣讀魏延表。其略曰:“征西大將軍、南鄭侯臣魏延,誠惶誠恐,頓首上言:楊儀自總兵權,率 衆造反,劫丞相靈柩,欲引敵人入境。臣先燒絕棧道,以兵守禦。謹此奏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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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가 듣고 대성통곡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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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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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울다가 용상 위에 쓰러졌다. 모시는 신하가 부축하여 후궁으로 들어갔다. 오 태후가 듣고, 역시 목놓아 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많은 관리가 애통해 하지 않는 이가 없고 백성들은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후주가 날마다 비통하여 조회를 열지 못하는데, 갑자기 위연이 표를 올려 양의가 반란을 일으킨다고 했다. 신하들이 크게 놀라서 궁궐로 들어가 후주에게 아뢰었다. 이때 오 태후도 역시 궁중에 있었다. 후주가 신하들의 상주를 듣고 크게 놀라 근신을 시켜 위연의 표를 읽게 했다. 그 표에 대략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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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대장군 남정후 신 위연이 참으로 황공하오나 머리를 조아려 말씀드립니다. 양의는 스스로 병권을 장악하여 무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서 승상의 영구(시체를 넣은 관)를 빼앗아 반적들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 들어오려고 합니다. 신이 먼저 잔도를 불태워 끊고 병력으로써 막아 지키고 있습니다. 삼가 이렇게 아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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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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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畢,後主曰:“魏延乃勇將,足可拒楊儀等 衆,何故燒絕棧道?”吳太後曰:“嘗聞先帝有言:孔明識魏延腦後有反骨,每欲斬之;因憐其勇,故姑留用。今彼奏楊儀等造反,未可輕信。楊儀乃文人,丞相委以長史之任,必其人可用。今日若聽此一面之詞,楊儀等必投魏矣。此事當深慮遠議,不可造次。” 衆官正商議間,忽報:長史楊儀有緊急表到。近臣拆表讀曰:“長史、綏軍將軍臣楊儀,誠惶誠恐,頓首謹表:丞相臨終,將大事委於臣,照依舊制,不敢變更,使魏延斷後,薑維次之。今魏延不遵丞相遺語,自提本部人馬,先入漢中,放火燒斷棧道,劫丞相靈車,謀爲不軌。變起倉卒,謹飛章奏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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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를 마치자 후주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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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연은 용장이라서 족히 양의 등의 무리를 막을 수 있거늘 무슨 까닭으로 잔도를 불태운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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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오 태후가 말하기를,
 
25
“일찍이 선제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는데, 공명이 위연의 머리 뒤에 반골이 있는 것을 알고 매번 그를 참하려 하였으나 그 용기를 아껴 우선 쓰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제 그가 양의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아뢰었으나 아직은 가볍게 믿을 수 없습니다. 양의는 문신이라 승상이 장사(비서장)의 임무를 맡겼으니 틀림없이 그 사람은 믿고 쓴 것입니다. 오늘 만약 이렇게 한쪽의 말만 듣는다면 양의 등은 틀림없이 위나라에 투항할 것입니다. 이런 일은 마땅히 깊이 생각하여 멀리 보고 의논해야지 성급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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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뭇 관리가 상의하고 있는데, 장사 양의가 긴급히 올린 표가 당도했다고 했다. 근신이 표를 열어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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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수군장군 양의가 참으로 황공하옵게도 머리를 조아려 삼가 표를 올립니다. 승상께서 임종하며 장차 대사를 신에게 위임했습니다. 옛 제도를 감히 변경하지 말라는 지시에 따라, 저는 위연으로 하여금 후미를 엄호하게 하고 강유를 그 밑에 두었습니다. 이제 위연이 승상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스스로 휘하 인마를 거느리고 한중으로 먼저 들어가 불을 질러 잔도를 끊고 승상의 영구를 실은 수레를 빼앗으려 하며 반역을 모의했습니다. 변란이 갑자기 일어나서 삼가 급하게 글을 올려 아뢰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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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29
太後聽畢,問:“卿等所見若何?”蔣琬奏曰:“以臣愚見:楊儀爲人雖稟性過急,不能容物,至於籌度糧草,參贊軍機,與丞相辦事多時,今丞相臨終,委以大事,決非背反之人。魏延平日恃功務高,人皆下之;儀獨不假借,延心懷恨;今見儀總兵,心中不服,故燒棧道,斷其歸路,又誣奏而圖陷害。臣願將全家良賤,保楊儀不反。實不敢保魏延。”董允亦奏曰:“魏延自恃功高,常有不平之心,口出怨言。向所以不即反者,懼丞相耳。今丞相新亡,乘機爲亂,勢所必然。若楊儀,才幹敏達,爲丞相所任用,必不背反。”
 
30
태후가 듣고 나서, 묻기를,
 
31
“경들의 소견은 어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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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장완이 아뢰기를,
 
33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양의는 사람됨이 비록 품성이 지나치게 급하고 남을 용납하지 못하지만, 군량을 준비하고 군사 기밀을 보좌하며 승상과 더불어 일을 처리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에 승상이 임종하며 대사를 위임했으니, 그는 결코 배반할 사람이 아닙니다. 위연이 평소에 자신의 공을 믿고 높은 자리를 탐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경멸했습니다. 양의가 유독 그를 가차 없이 대하니, 위연이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었습니다. 이제 양의가 병력을 총지휘하자 위연이 마음속으로 불복하고, 그런 까닭으로 잔도를 불태워 귀로를 차단한 것입니다. 게다가 양의를 무고하는 글을 올려,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꾀한 것입니다. 신이 바라옵건대 저희 온 집안의 양천(양민과 천민)을 걸고서라도 양의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보증할지언정, 참으로 감히 위연을 보증하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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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동윤도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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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연이 공이 높은 것을 자부하며 늘 불평하는 마음을 품고 입 밖으로 원망의 말을 내뱉곤 했습니다. 예전에 즉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오로지 승상을 두려워했을 따름입니다. 이제 승상이 사망하자, 그 틈을 타고 반란하는 것이니 이러한 형세는 필연입니다. 만약 양의가 재간이 기민하고 통달하여 승상이 임용한 것이라면, 틀림없이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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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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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主曰:“若魏延果反,當用何策禦之?”蔣琬曰:“丞相素疑此人,必有遺計授與楊儀。若儀無恃,安能退入穀口乎?延必中計矣。陛下寬心。”不多時,魏延又表至,告稱楊儀背反。正覽表之間,楊儀又表到,奏稱魏延背反。二人接連具表,各陳是非。忽報費禕到。後主召入,禕細奏魏延反情。後主曰:“若如此,且令董允假節釋勸,用好言撫慰。”允奉詔而去。卻說魏延燒斷棧道,屯兵南穀,把住隘口,自以爲得計;不想楊儀、薑維星夜引兵抄到南穀之後。儀恐漢中有失,令先鋒何平引三千兵先行。儀同薑維等引兵扶柩望漢中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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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가 말하기를,
 
39
“만약 위연이 반역했다면 무슨 계책을 써서 막아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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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장완이 말하기를,
 
41
“승상이 평소 그를 의심했으니 틀림없이 계책을 양의에게 남겼을 것입니다. 양의가 믿는 것도 없이 어찌 골짜기로 들어왔겠습니까? 위연은 반드시 계책에 걸려들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42
했다. 얼마 뒤 위연이 다시 표를 올려, 양의가 반역했다고 했다. 위연의 표를 읽는 사이에, 양의가 다시 표를 올려 위연이 반역했다고 했다. 두 사람이 잇달아 표를 올려서 제각기 시비를 늘어놓았다. 갑자기 비위가 왔다고 알리니, 후주가 불러들였다. 비위가 위연에게 반역의 뜻이 있다고 자세히 아뢰니, 후주가 말하기를,
 
43
“이렇다면 우선 동윤에게 부절(신표)을 주어 해결하러 가게 해서, 좋은 말로 그를 달래야겠소.”
 
44
했다. 동윤이 황제의 조서를 받들어 떠났다. 한편 위연은 잔도를 불살라 끊고, 남곡에 병력을 주둔하여 요충지를 장악하고, 스스로 계책이 성공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의와 강유가 한밤에 병력을 이끌고 남곡의 뒤로 우회했다. 양의가 한중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선봉장 하평에게 군사 3천을 이끌고 먼저 가게 했다. 양의가 강유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제갈공명의 관을 호송해서 한중을 향해 갔다.
 
 
45
且說,何平引兵徑到南穀之後,擂鼓呐喊。哨馬飛報魏延,說楊儀令先鋒何平引兵自槎山小路抄來搦戰。延大怒,急披掛上馬,提刀引兵來迎。兩陣對圓,何平出馬大罵曰:“反賊魏延安在?”延亦罵曰:“汝助楊儀造反,何敢罵我!”平叱曰:“丞相新亡,骨肉未寒,汝焉敢造反!”乃揚鞭指川兵曰:“汝等軍士,皆是西川之人,川中多有父母妻子,兄弟親朋;丞相在日,不曾薄待汝等,今不可助反賊,宜各回家鄉,聽候賞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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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하평은 군사를 이끌고 지름길로 남곡의 뒤로 가서, 북을 두드리고 고함을 질렀다. 정찰 기병이 급히 위연에게 알리며, 양의가 선봉장 하평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차산의 지름길로 돌아서 싸움을 건다고 했다. 위연이 크게 노해, 급히 갑옷을 차려입고 말을 타더니, 칼을 쥐고 군사를 이끌고 맞서러 갔다. 양쪽 진영이 대치하자, 하평이 말을 타고 나와서 크게 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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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위연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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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위연도 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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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이 양의를 도와 반역하면서 어찌 감히 나를 욕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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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하평이 외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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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께서 돌아가시고 골육이 식지도 않았는데 네놈이 어찌 감히 반란을 일으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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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이에 채찍을 들어 서천의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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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군사들은 모두가 서천 사람이니 서천에 부모와 처자, 형제와 친구가 많을 것이다. 승상께서 살아 계실 때 너희를 박대하지 않으셨으니 이제 반적을 돕지 말고 마땅히 고향 집으로 돌아가 포상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54
했다.
 
 
55
衆軍聞言,大喊一聲,散去大半。延大怒,揮刀縱馬,直取何平。平挺槍來迎。戰不數合,平詐敗而走,延隨後趕來。 衆軍弓弩齊發,延撥馬而回。見 衆軍紛紛潰散,延轉怒,拍馬趕上,殺了數人,卻只止遏不住;只有馬岱所領三百人不動,延謂岱曰:“公真心助我,事成之後,決不相負。”遂與馬岱追殺何平。平引兵飛奔而去。魏延收聚殘軍,與馬岱商議曰:“我等投魏,若何?”岱曰:“將軍之言,不智甚也。大丈夫何不自圖霸業,乃輕屈膝於人耶?吾觀將軍智勇足備,兩川之士,誰敢抵敵?吾誓同將軍先取漢中,隨後進攻西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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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군사가 이 말을 듣고, 크게 함성을 한바탕 지르며, 태반이 흩어져 달아났다. 위연이 크게 노해 칼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하평에게 달려들었다. 하평이 창을 꼬나쥐고 맞붙으러 나왔다. 몇 번 부딪히지 않고, 하평이 못 이기는 척 달아나니 위연이 뒤쫓았다. 뭇 군사가 활과 쇠뇌를 일제히 쏘아대니 위연이 말머리를 돌려서 돌아갔다. 그런데 뭇 군사가 어지러이 흩어지는 것이 보이자, 위연이 더욱 노하여, 말을 몰고 뒤쫓아서 몇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달아나는 것을 막지 못했고, 다만 마대가 이끄는 3백 명만 동요하지 않았다. 위연이 마대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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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께서 진심으로 나를 도우니, 일이 이뤄진 뒤에 결코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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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곧 마대와 더불어 하평을 추격했다. 하평은 군사를 이끌고 급히 달아났다. 위연은 남은 병사들을 거두어 모으고, 마대와 상의하여 말하기를,
 
59
“우리가 위나라로 가는 것이 어떻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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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마대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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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말씀은 몹시 지혜롭지 못합니다. 대장부가 어쩌 스스로 패업(으뜸가는 사업)을 도모하지 않은 채 함부로 남에게 무릎을 꿇겠습니까? 제가 보건대, 장군께서 지혜와 용맹을 두루 갖추었으니 양천(서천과 동천)의 군사들이 누가 감히 맞서겠습니까? 내가 맹세코 장군과 함께할 것이니, 먼저 한중을 취하고 뒤따라 양천으로 진공합시다.”
 
62
했다.
 
 
63
延大喜,遂同馬岱引兵直取南鄭。薑維在南鄭城上,見魏延、馬岱耀武揚威,風擁而來。維急令拽起吊橋。延、岱二人大叫:“早降!”薑維令人請楊儀商議曰:“魏延勇猛,更兼馬岱相助,雖然軍少,何計退之?”儀曰:“丞相臨終,遺一錦囊,囑曰:若魏延造反,臨陣對敵之時,方可開拆,便有斬魏延之計。今當取出一看。”
 
64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곧 마대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남정을 점령하러 갔다. 강유가 남정성 위에서 바라보니, 위연과 마대가 무력을 과시하며 바람같이 몰려들었다. 강유가 급히 명령을 내려, 적교(해자에 걸쳐 들어올리는 다리)를 들어올리라고 했다. 위연과 마대 두 사람이 크게 외치기를,
 
65
“어서 항복하라!”
 
66
하니, 강유가 사람을 보내 양의를 불러서 상의하기를,
 
67
“위연이 용맹하고, 더욱이 마대가 도우니, 비록 저들의 군사가 적다 하더라도 무슨 수로 물리치겠소?”
 
68
하니, 양의가 말하기를,
 
69
“승상께서 임종하시며, 비단 주머니를 한 개 남기시며 부탁하시길,‘만약 위연이 반란을 일으켜서 적병과 맞설 때 열어서 보면 위연을 참할 계책이 있을 것이라.’하셨소. 지금 당장 꺼내서 봐야겠소.”
 
70
했다.
 
 
71
遂出錦囊拆封看時,題曰:“待與魏延對敵,馬上方許拆開。”維大喜曰:“既丞相有戒約,長史可收執。吾先引兵出城,列爲陣勢,公可便來。”薑維披掛上馬,綽槍在手,引三千軍,開了城門,一齊沖出,鼓聲大震,排成陣勢。維挺槍立馬於門旗之下,高聲大罵曰:“反賊魏延!丞相不曾虧你,今日如何背反?”延橫刀勒馬而言曰:“伯約,不幹你事。只教楊儀來!”儀在門旗影裏,拆開錦囊視之,如此如此。儀大喜,輕騎而出,立馬陣前,手指魏延而笑曰:“丞相在日,知汝久後必反,教我提備,今果應其言。汝敢在馬上連叫三聲‘誰敢殺我’,便是真大丈夫,吾就獻漢中城池與汝。”
 
72
곧 비단 주머니를 꺼내서, 봉한 것을 뜯어서 읽으려는데, 겉에 적기를,
 
73
“위연과 대적하기를 기다려서, 말 위에서 열어보시오.”
 
74
했다.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75
“이미 승상께서 경계하고 약속한대로 장사께서 보관하시오. 내가 먼저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가서 전투 대형을 벌일 테니, 공께서 곧 나오시오.”
 
76
했다. 강유가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창을 손에 쥐었다. 군사 3천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일제히 달려나가 북소리 크게 울리며 전투 대형을 벌였다. 강유가 창을 꼬나쥐고 군영 입구의 큰 깃발 아래 말을 세워 멈추고 소리높여 크게 꾸짖기를,
 
77
“반란을 일으킨 역적 위연아! 승상께서 너를 버리신 적이 없거늘 오늘 어찌 배반하느냐?”
 
78
하니, 위연이 칼을 비껴들고 말을 세워서 말하기를,
 
79
“백약(강유)과는 상관없으니, 다만 양의를 불러와라!”
 
80
했다. 양의가 문기의 그늘 아래에서 비단 주머니를 열어보니, 이러저러하게 하라고 적혀 있었다. 양의가 크게 기뻐하며 가볍게 말을 타고 나가서 군영 앞에서 말을 세운 뒤 손가락으로 위연을 가리키고 웃으며 말하기를,
 
81
“승상께서 생전에 네가 먼 훗날 반드시 배반할 것을 아시고 나더러 준비하라 지시하셨는데 이제 과연 그 말이 맞구나. 네가 감히 말 위에서 연달아 세 번 ‘누가 감히 나를 죽이랴!’하고 외치면 참으로 대장부가 맞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곧 한중의 성을 네게 주겠다.”
 
82
했다.
 
 
83
延大笑曰:“楊儀匹夫聽著!若孔明在日,吾尚懼他三分;他今已亡,天下誰敢敵我?休道連叫三聲,便叫三萬聲,亦有何難!”遂提刀按轡,於馬上大叫曰:“誰敢殺我?”一聲未畢,腦後一人厲聲而應曰:“吾敢殺汝!”手起刀落,斬魏延於馬下。 衆皆駭然。斬魏延者,乃馬岱也。原來孔明臨終之時,授馬岱以密計,只待魏延喊叫時,便出其不意斬之;當日,楊儀讀罷錦囊計策,已知伏下馬岱在彼,故依計而行,果然殺了魏延。後人有詩曰:“諸葛先機識魏延,已知日後反西川。錦囊遺計人難料,卻見成功在馬前。”
 
84
위연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85
“양의 이 필부 놈아 들어라! 공명의 생전에 내가 그를 좀 두려워했다만, 이제 그가 죽었는데, 천하에서 누가 감히 나를 대적하겠느냐? 세 번 잇달아 외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3만 번을 외치는 것도 무엇이 어렵겠느냐?”
 
86
했다. 곧 칼을 들고 말고삐를 잡은 채 말 위에서 크게 외치기를,
 
87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
 
88
하니, 한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머리 뒤에서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응답하기를,
 
89
“내가 너를 죽이겠다!”
 
90
하고, 칼을 들었다가 내리치니 위연이 베어져 말 아래 떨어졌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위연을 벤 사람은 바로 마대였다. 원래, 공명이 임종할 때 마대에게 비밀 계책을 주며, 위연이 외칠 때를 기다려, 뜻하지 않은 상태를 노려서 그를 베라고 한 것이었다. 그날 양의가 비단 주머니 속의 계책을 읽고 나서, 이미 마대가 그쪽에 숨어 있는 것을 알고, 계책대로 행하여 과연 위연을 죽였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91
“제갈량이 위연을 미리 알아보고, 훗날 서천을 배반할 것을 이미 알았네. 비단 주머니에 계책을 남긴 것을 사람들이 헤아리기 어려웠지만, 오히려 마대가 바로 눈앞에서 공을 세울 것을 알았구나.”
 
92
했다.
 
 
93
卻說,董允未及到南鄭,馬岱已斬了魏延,與薑維合兵一處。楊儀具表星夜奏聞後主。後主降旨曰:“既已名正其罪,仍念前功,賜棺槨葬之。”楊儀等扶孔明靈柩到成都,後主引文武官僚,盡皆掛孝,出城二十裏迎接。後主放聲大哭。上至公卿大夫,下及山林百姓,男女老幼,無不痛哭,哀聲震地。後主命扶柩入城,停於丞相府中。其子諸葛瞻守孝居喪。
 
94
한편, 동윤이 미처 남정에 이르기 전에 마대가 이미 위연을 죽이고 강유와 병력을 합쳤다. 양의가 표를 써서 한밤에 후주에게 아뢰었다. 후주가 교지를 내려 말하기를,
 
95
“이미 위연의 죄를 밝혔으나 전날의 공로를 생각하여 관곽(속널과 겉널)을 하사할 테니 장례를 치르시오.”
 
96
했다. 양의 등이 공명의 영구를 성도로 옮기니, 후주가 문무 관료를 이끌고 나왔다. 모두 상복을 입고 성 밖 2십 리까지 나와서 영접했다. 후주가 목놓아 크게 곡했다. 위로는 공경대부에서 아래로는 산림의 백성까지, 남녀노소가 통곡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구슬픈 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후주가 성안으로 운구하라고 명하여, 승상의 부중에 안치했다. 그 아들 제갈첨이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렀다.
 
 
97
後主還朝,楊儀自縛請罪。後主令近臣去其縛曰:“若非卿能依丞相遺教,靈柩何日得歸,魏延如何得滅。大事保全,皆卿之力也。”遂加楊儀爲中軍師。馬岱有討逆之功,即以魏延之爵爵之。儀呈上孔明遺表。後主覽畢,大哭,降旨蔔地安葬。費禕奏曰:“丞相臨終,命葬於定軍山,不用牆垣磚石,亦不用一切祭物。”後主從之。擇本年十月吉日,後主自送靈柩至定軍山安葬。後主降詔致祭,諡號忠武侯;令建廟於沔陽,四時享祭。
 
98
후주가 궁궐로 돌아오니, 양의가 스스로 결박하여 죄를 청했다. 후주가 근신(가까이 모시는 신하)을 시켜 그 결박을 풀게 하고 말하기를,
 
99
“만약 경이 승상의 남긴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더라면 승상의 영구는 언제 돌아오고 위연은 어떻게 멸망시켰겠소. 큰일이 보전된 것은 모두 경의 노력 덕이오.”
 
100
하고, 곧 양의에게 중군사(승상부의 관속)의 직위를 더해준다. 마대도 역적을 토벌한 공로로 즉시 위연의 벼슬을 이어받았다. 양의가 공명이 남긴 표를 바치니, 후주가 읽고 나서 크게 곡하고, 교지를 내려 장지를 잘 골라 안장하도록 했다. 비위가 아뢰기를,
 
101
“승상이 임종하며 명하기를 정군산에 안장하되 담을 쌓거나 벽돌을 쓰지 말고 일체의 제물도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02
하니, 후주가 이를 따랐다. 이해 시월의 길일을 골라 후주가 직접 영구를 정군산까지 따라가서 안장했다. 후주가 조서를 내려 제사하고, 충무후라는 시호를 내렸다. 면양에 사당을 지어, 네 철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
 
 
103
後杜工部有詩曰:“丞相祠堂何處尋,錦官城外柏森森。映階碧草自春色,隔葉黃鸝空好音。三顧頻煩天下計,兩朝開濟老臣心。出師未捷身先死,長使英雄淚滿襟!”又杜工部詩曰:“諸葛大名垂宇宙,宗臣遺像肅清高。三分割據紆籌策,萬古雲霄一羽毛。伯仲之間見伊呂,指揮若定失蕭曹。運移漢祚終難複,志決身殲軍務勞。”
 
104
훗날 두공부(두보)가 시를 지어 이르기를,
 
105
“승상의 사당을 어디서 찾으리오. 금관성 밖 잣나무 우거진 곳이네. 계단을 덮은 푸른 풀은 절로 봄빛을 띠었고, 나뭇잎 사이 꾀꼬리는 아름답게 지저귀네. 삼고초려로 천하의 계책을 자주 간청하니, 두 임금 모시며 나라를 열어 구함은 늙은 신하의 충심이라. 출사표 올리고 이기지 못한 채 몸이 먼저 죽으니, 길이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로 옷깃을 적시게 하네.”
 
106
했다. 또 두공부의 다른 시에 이르기를,
 
107
“제갈공명의 큰 이름이 우주에 드리우고, 공신의 남긴 초상은 맑고 높아 숙연하네. 천하를 셋으로 나눌 계책을 내놓으니, 만고에 걸쳐 높은 하늘에 날아오른 깃털 같구나. 이윤과 여상 같은 분들과 엇비슷하고, 승리를 확정한 듯 지휘하니 소하와 조참도 빛을 잃네. 운수가 다하니 한나라도 결국 부흥하기 어렵고, 뜻은 굳건만 몸은 죽으니 군무에 과로하였네.”
 
108
했다.
 
 
109
卻說後主回到成都,忽近臣奏曰:“邊庭報來,東吳令全琮引兵數萬,屯於巴丘界口,未知何意。”後主驚曰:“丞相新亡,東吳負盟侵界,如之奈何?”蔣琬奏曰:“臣敢保王平、張嶷引兵數萬屯於永安,以防不測。陛下再命一人去東吳報喪,以探其動靜。”後主曰:“須得一舌辯之士爲使。”一人應聲而出曰:“微臣願往。” 衆視之,乃南陽安 衆人,姓宗,名預,字德豔,官任參軍、右中郎將。後主大喜,即命宗預往東吳報喪,兼探虛實。
 
110
한편, 후주가 성도로 돌아오니, 홀연 근신이 아뢰기를,
 
111
“변방에서 보고하기를, 동오가 전종에게 군사 수만을 이끌고 파구의 입구에 주둔하라 했다는데, 그 속셈을 아직 모르겠습니다.”
 
112
했다. 후주가 놀라서 말하기를,
 
113
“승상이 세상을 뜨자마자, 동오가 맹약을 어기고 국경을 침범하니 어찌해야겠소?”
 
114
하니, 장완이 아뢰기를,
 
115
“신이 감히 왕평과 장의를 추천하여 군사 수만을 이끌고 영안에 주둔해서 불의의 사태를 방비하라고 해야 합니다. 또한 폐하께서 사람을 동오로 보내어 승상의 별세를 알리고 그 동정을 살피게 하십시오.”
 
116
했다. 후주가 말하기를,
 
117
“아무래도 변설이 뛰어난 인물을 사자로 보내야겠소.”
 
118
하니, 한 사람이 말이 끝나자마자 나오며 말하기를,
 
119
“미천한 신이 가겠습니다.”
 
120
했다. 여러 사람이 바라보니 바로 남양 안중 사람으로 성은 종이고, 이름은 예이며, 자는 덕염인데, 벼슬이 참군 우중랑장이었다. 후주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종예에게 동오로 가서 공명의 별세를 알리고 동오의 허실을 정탐하라고 했다.
 
 
121
宗預領命,徑到金陵,入見吳主孫權。禮畢,只見左右人皆著素衣。權作色而言曰:“吳、蜀已爲一家,卿主何故而增白帝之守也?”預曰:“臣以爲東益巴丘之戍,西增白帝之守,皆事勢宜然,俱不足以相問也。”權笑曰:“卿不亞於鄧芝。”乃謂宗預曰:“朕聞諸葛丞相歸天,每日流涕,令官僚盡皆掛孝。朕恐魏人乘喪取蜀,故增巴丘守兵萬人,以爲救援,別無他意也。”預頓首拜謝。權曰:“朕既許以同盟,安有背義之理?”預曰:“天子因丞相新亡,特命臣來報喪。”權遂取金鈚箭一枝折之,設誓曰:“朕若負前盟,子孫絕滅!”又命使齎香帛奠儀,入川致祭。
 
122
종예가 명령을 받고, 곧장 금릉(남경)으로 가서, 오나라 임금 손권을 만나러 들어갔다. 인사를 마치고 보니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소복을 입고 있었다. 손권이 낯빛을 바꾸어 말하기를,
 
123
“오나라와 촉나라가 이미 한집안인데 경의 주군은 무슨 까닭으로 백제성의 수비를 강화하는 것이오?”
 
124
했다. 종예가 말하기를,
 
125
“신이 헤아리기에, 동쪽에서 파구의 병력을 증강하니, 서쪽에서 백제성의 수비를 강화하는 것은 모두 사세에 따라 합당한 일입니다. 이런 것을 서로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126
하니, 손권이 웃으며 말하기를,
 
127
“경은 등지보다 못하지 않구려.”
 
128
했다. 그리고 종예에게 말하기를,
 
129
“짐은 제갈 승상이 귀천한 것을 듣고 매일 눈물을 흘리며 관료들에게 모두 상복을 입으라고 했소. 짐은 위나라 사람들이 초상을 틈타서 촉나라를 공격할까 두려워서, 파구의 수비 병력 1만을 늘려서 촉나라를 구원하려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소.”
 
130
했다. 종예가 고개를 숙여 사례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131
“짐이 이미 동맹을 받아들였는데 어찌 의리를 배반할 리 있겠소?”
 
132
하니, 종예가 말하기를,
 
133
“저희 천자께서 승상이 얼마 전에 별세하자 특별히 신을 보내어 알리게 하셨습니다.”
 
134
했다. 손권이 곧 금비전(금살촉의 화살) 하나를 가져와서 부러뜨리며 맹세하기를,
 
135
“짐이 만약 지난날의 맹약을 어긴다면 자손들이 절멸될 것이오!”
 
136
하고, 또한 사자에게 향백(향과 비단)과 전의(조의금)를 가지고 서천으로 들어가서 제사를 올리게 했다.
 
 
137
宗預拜辭吳主,同吳使還成都,入見後主,奏曰:“吳主因丞相新亡,亦自流涕,令群臣皆掛孝。其益兵巴丘者,恐魏人乘虛而入,別無異心。今折箭爲誓,並不背盟。”後主大喜,重賞宗預,厚待吳使去訖。遂依孔明遺言,加蔣琬爲丞相、大將軍,錄尚書事;加費禕爲尚書令,同理丞相事;加吳懿爲車騎將軍,假節督漢中;薑維爲輔漢將軍、平襄侯,總督諸處人馬,同吳懿出屯漢中,以防魏兵。其餘將校,各依舊職。
 
138
종예가 오나라 군주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나라 사자와 함께 성도로 돌아와서 후주를 만나러 들어가 아뢰기를,
 
139
“오나라 임금이 승상이 별세하자 역시 눈물을 흘리며 여러 신하에게 모두 상복을 입으라 했습니다. 파구에 병력을 증강한 것은 위나라 사람들이 이 틈을 타서 침입할까 우려해서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화살을 꺾어 맹세했으니 동맹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140
했다. 후주가 크게 기뻐하며, 종예를 크게 포상하고 오나라 사자를 잘 대접해 떠나보냈다. 곧 공명의 유언에 따라, 장완을 승상, 대장군, 녹상서사(문서관리 총괄)로 제수하고, 비위를 상서령으로 제수해, 승상의 사무를 함께 처리하게 했다. 또한 오의를 거기장군으로 제수해서 신표를 주어 한중의 병력을 총독하게 하고, 강유를 보한장군 평양후에 제수해서 각처의 인마를 총독하고, 오의와 함께 한중으로 나가서 주둔하여 위나라 군사를 막게 했다. 그 나머지 장교들은 제각각 원래의 직위를 따랐다.
 
 
141
楊儀自以爲年宦先於蔣琬,而位出琬下;且自恃功高,未有重賞,口出怨言,謂費禕曰:“昔日丞相初亡,吾若將全師投魏,寧當寂寞如此耶!”費禕乃將此言具表密奏後主。後主大怒,命將楊儀下獄勘問,欲斬之。蔣琬奏曰:“儀雖有罪,但日前隨丞相多立功勞,未可斬也,當廢爲庶人。”後主從之,遂貶楊儀赴漢嘉郡爲民。儀羞慚自刎而死。
 
142
양의는 스스로 나이와 벼슬이 장완보다 앞선다고 여겼으나 직위가 장완의 아래가 되었다. 또 자신의 공이 높다고 자부했는데 큰 포상이 없자 입에서 원망의 말이 나와 비위에게 이르기를,
 
143
“지난날 승상께서 돌아가시자마자 내가 만약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에 투항했다면 이렇게 적막한 대우는 받지 않았을 것이오!”
 
144
했다. 비위가 이 말을 모두 후주에게 은밀히 아뢰니, 후주가 크게 노하여, 양의를 하옥하고 심문해서 처형하려 했다. 장완이 아뢰기를,
 
145
“양의가 비록 죄를 지었으나, 일전에 승상을 수행하며 공로를 많이 세웠으니 참할 수 없습니다. 그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드는 것이 마땅합니다.”
 
146
하니, 후주가 이 말에 따라 곧 양의를 한중의 가군으로 귀양을 보내고 평민으로 만들었다. 양의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147
蜀漢建興十三年,魏主曹睿青龍三年,吳主孫權嘉禾四年,三國各不興兵,單說魏主封司馬懿爲太尉,總督軍馬,安鎮諸邊。懿拜謝回洛陽去訖。魏主在許昌,大興土木,建蓋宮殿;又於洛陽造朝陽殿、太極殿,築總章觀,俱高十丈;又立崇華殿、青霄閣、鳳凰樓、九龍池,命博士馬鈞監造,極其華麗:雕梁畫棟,碧瓦金磚,光輝耀日。選天下巧匠三萬餘人,民夫三十餘萬,不分晝夜而造。民力疲困,怨聲不絕。
 
148
촉한 건흥 13년, 위나라 군주 조예의 청룡 3년, 오나라 군주 손권의 가화 4년, 삼국이 제각기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다. 다만 위나라 군주는 사마의를 태위로 봉하여 군마를 총독하고, 여러 변방을 안정시키게 했다. 사마의가 사례를 올리고 낙양으로 돌아갔다. 위나라 군주가 허창에서 토목 사업을 크게 일으켜 궁전을 지었다. 또한 낙양에 조양전, 태극전을 짓고, 총장관을 지었다. 모두 높이가 열 길에 달했다. 또한 숭화전, 청하각, 봉황루, 구룡지를 만들었다. 박사 마균을 시켜 건설을 감독하니, 지극히 화려했다. 조각을 새긴 들보와 그림을 그린 기둥, 푸른 기와와 황금색 벽돌로 꾸미니 태양처럼 빛났다. 천하의 뛰어난 장인 3만여 명과 백성 3십만여 명을 뽑아서 밤낮없이 건축했다. 백성들이 지쳐서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149
睿又降旨起土木於芳林園,使公卿皆負土樹木於其中。司徒董尋上表切諫曰。“伏自建安以來,野戰死亡,或門殫戶盡;雖有存者,遺孤老弱。若今宮室狹小,欲廣大之,猶宜隨時,不妨農務。況作無益之物乎?陛下既尊群臣,顯以冠冕,被以文繡,載以華輿,所以異於小人也。今又使負木擔土,沾體塗足,毀國之光,以崇無益:甚無謂也。孔子雲: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無忠無禮,國何以立?臣知言出必死;而自比於牛之一毛,生既無益,死亦何損。秉筆流涕,心與世辭。臣有八子,臣死之後,累陛下矣。不勝戰慄待命之至!”
 
150
조예가 다시 교지를 내려서 방림원에 토목 공사를 일으키게 하여, 공경(고위 관료)들도 모두 그 안에서 흙과 나무를 져서 나르게 했다. 사도 동심이 표를 올려 간절히 간하기를,
 
151
“건안(한나라 헌제의 연호) 이래 백성들이 싸움터에서 죽거나 온 집안이 몰살당했습니다. 비록 살아남았더라도 고아나 노약자들입니다. 만약 이제 궁전이 협소하여 이를 넓고 크게 만들고 싶더라도 마땅히 시기를 맞춰서 농사를 방해하지 말아야 하거늘, 하물며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을 짓겠습니까? 폐하께서 신하들을 존중하신 까닭에, 관면(모자)을 머리에 쓰게 하고, 무늬로 수놓은 옷을 입게 하고, 화려한 수레를 타게 하여서, 그들을 소인(평민)들과 구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로 하여금 나무와 흙을 져 나르고, 몸을 적시고 발에 진흙을 묻게 했습니다. 국가의 영광을 훼손하면서 아무 쓸모 없는 것들을 존숭하시니 참으로 부당합니다. 공자께서 이르시길,‘임금이 신하에게 예를 갖춰서 부리면, 신하는 충성을 바쳐 임금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충성도 없고 예의도 없다면 국가가 어찌 존립하겠습니까? 신은 이런 말을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소의 털 한 올과 같아서, 살아도 아무 쓸모가 없고, 죽어도 아무 손해가 없을 것입니다. 붓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으로 세상에 이별을 고합니다. 신에게 아들이 여덟 있사온데, 신이 죽은 뒤에 폐하께 누가 될 것입니다. 몸이 떨려옴을 이기지 못하며, 어명을 기다리겠습니다!”
 
152
했다.
 
 
153
睿覽表怒曰:“董尋不怕死耶!”左右奏請斬之。睿曰:“此人素有忠義,今且廢爲庶人。再有妄言者必斬!”時有太子舍人張茂,字彥材,亦上表切諫,睿命斬之。即日召馬鈞問曰:“朕建高台峻閣,欲與神仙往來,以求長生不老之方。”鈞奏曰:“漢朝二十四帝,惟武帝享國最久,壽算極高,蓋因服天上日精月華之氣也:嘗於長安宮中,建柏梁台;台上立一銅人,手捧一盤,名曰‘承露盤’,接三更北鬥所降沆瀣之水,其名曰‘天漿’,又曰‘甘露’。取此水用美玉爲屑,調和服之,可以反老還童。”睿大喜曰:“汝今可引人夫星夜至長安,拆取銅人,移置芳林園中。”
 
154
조예가 표를 읽고 나서 노하여 말하기를,
 
155
“동심은 죽는 것도 두렵지 않느냐!”
 
156
했다. 좌우의 사람들이 그를 처형하라고 주청하니 조예가 말하기를,
 
157
“그는 평소 충의로운 사람이니 이제 서인으로 폐하겠소. 다시 이런 망언을 하는 자는 반드시 참하겠소!”
 
158
했다. 이때 태자의 사인(가신)들 가운데 이름이 장무이고, 자가 언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역시 표를 올려 간절하게 간하니, 조예가 그를 처형하라고 명했다. 이날 조예가 마균을 불러 그에게 묻기를,
 
159
“짐이 높은 누대와 전각을 지어서, 신선과 더불어 왕래하며, 장생불로의 방법을 구하고 싶소.”
 
160
하니, 마균이 아뢰기를,
 
161
“한나라의 24 황제들 가운데 오직 무제께서 가장 오래 나라를 다스리고 수명이 아주 길었습니다. 그 까닭은 대개 하늘의 해와 달의 정기를 흡수해서입니다. 일찍이 장안의 궁중에 백량대를 짓고, 대 위에 동인(구리 인형) 하나를 세웠습니다. 그가 손으로 승로반이라는 쟁반을 들게 하고, 3경(자정쯤)에 북두성이 내리는 이슬을 받아 모아서 그것을 천장 또는 감로라고 불렀습니다. 이 물에다 아름다운 구슬 가루를 개어 조제하여 복용했습니다. 이로써 늙음을 되돌려 젊어질 수 있었습니다.”
 
162
하니,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163
“그대는 지금 인부들을 이끌고 한밤에라도 장안으로 가서 그 동인을 뜯어내서 방림원 안으로 옮겨 놓으시오.”
 
164
했다.
 
 
165
鈞領命,引一萬人至長安,令周圍搭起木架,上柏梁台去。不移時間,五千人連繩引索,旋環而上。那柏梁台高二十丈,銅柱圓十圍。馬鈞教先拆銅人。多人並力拆下銅人來,只見銅人眼中潸然淚下。 衆皆大驚。忽然台邊一陣狂風起處,飛砂走石,急若驟雨;一聲響亮,就如天崩地裂:台傾柱倒,壓死千餘人。鈞取銅人及金盤回洛陽,入見魏主,獻上銅人、承露盤。魏主問曰:“銅柱安在?”鈞奏曰:“柱重百萬斤,不能運至。”睿令將銅柱打碎,運來洛陽,鑄成兩個銅人,號爲翁仲,列於司馬門外;又鑄銅龍鳳兩個:龍高四丈,鳳高三丈餘,立在殿前。又於上林苑中,種奇花異木,蓄養珍禽怪獸。
 
166
마균이 명령을 받들어, 1만 명을 이끌고 장안에 이르러, 주위에 나무시렁을 쌓아서 백량대에 올라갔다. 순식간에 5천 명이 밧줄을 연결해서 끌고 주위를 에워싸며 올라갔다. 이 백량대의 높이는 스무 길이고, 구리 기둥의 둘레는 열 아름이었다. 마균이 동인을 먼저 떼어내라고 지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동인을 떼어내서 오는데 동인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여러 사람이 모두 크게 놀랐다. 홀연히 백량대 주변에서 한바탕 미친 바람이 불고,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는 것이 마치 소나기가 퍼붓는 듯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이 커다란 소리가 울리더니, 백량대가 기울어지고 기둥이 쓰러져 1천여 명이 깔려 죽었다. 마균이 동인과 황금 쟁반을 가지고 낙양으로 돌아와서 위나라 군주를 뵙고 동인과 승로반을 헌상했다. 위나라 군주가 묻기를,
 
167
“구리 기둥은 어디 있소?”
 
168
하니, 마균이 아뢰기를,
 
169
“기둥의 무게가 백만 근이라서 옮겨올 수 없었습니다.”
 
170
했다. 조예가 영을 내려, 구리 기둥을 때려 부숴서 낙양으로 옮겨, 이를 녹여서 동인을 두 개 주조하여 옹중이라 일컫고, 사마문(황궁의 바깥문) 밖에 세우게 했다. 다시 구리로 용과 봉황을 주조하니, 용은 높이가 네 길, 봉황은 높이가 세 길이 넘었다. 함께 궁전 앞에 세웠다. 또 상림원에 기이한 꽃과 나무를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기르게 했다.
 
 
171
少傅楊阜上表諫曰:“臣聞堯尚茅茨,而萬國安居;禹卑宮室,而天下樂業;及至殷、周,或堂崇三尺,度以九筵耳。古之聖帝明王,未有極宮室之高麗,以凋敝百姓之財力者也。桀作璿室、象廊,紂爲傾宮、鹿台,以喪其社稷;楚靈以築章華而身受其禍;秦始皇作阿房而殃及其子,天下叛之,二世而滅。夫不度萬民之力,以從耳目之欲,未有不亡者也。陛下當以堯、舜、禹、湯、文、武爲法則,以桀、紂、楚、秦爲深誡。而乃自暇自逸,惟宮台是飾,必有危亡之禍矣。君作元首,臣爲股肱,存亡一體,得失同之。臣雖駑怯,敢忘諍臣之義?言不切至,不足以感寤陛下。謹叩棺沐浴,伏俟重誅。”
 
172
소부(보좌관) 양부가 표를 올려서 간하기를,
 
173
“신이 듣자오니, 요임금은 초가에 살았으나 천하가 평안했습니다. 우임금은 초라한 궁실에 살았으나 천하의 백성들이 생업을 즐겼습니다. 은나라와 주나라 시대에 이르러서야, 임금의 집이 3척이 더 높고, 넓이는 아홉 장 대자리 넓이였습니다. 옛날의 성왕들은 궁실을 높고 화려하게 지어서 백성의 재물과 힘을 피폐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걸왕이 옥돌로 궁실을 짓고 상아로 행랑을 꾸미고, 주왕이 경궁(기울어질 듯이 우뚝 솟은 궁궐)과 녹대를 짓더니, 마침내 나라를 잃었습니다. 초나라의 영왕이 장화대를 건축하더니 그 몸이 재앙을 입었습니다. 진시황이 아방궁을 짓자 재앙이 그 아들에게 미치고, 천하가 배반하여 겨우 2세 만에 멸망했습니다. 무릇 만민의 수고를 헤아리지 않은 채 이목의 욕구를 따랐다가 망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마땅히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왕, 문왕, 무왕을 본받으시고, 걸, 주, 초, 진을 깊이 경계해야 하시거늘, 스스로 안일에 빠져 오로지 궁실을 장식한다면 반드시 멸망의 재앙을 입을 것입니다. 군주는 국가의 원수이고 신하들은 그 다리와 팔이라서 존망을 한 몸처럼 함께하고 득실을 같이합니다. 신이 비록 우둔하고 겁이 많지만, 감히 간쟁하는 신하의 의무를 잊겠습니까? 제 말씀이 적절하고 알맞지 않아, 폐하를 감동시켜 깨우치게 하기에 부족하오나, 삼가 관을 준비하고 목욕재계하여 폐하께서 내리실 극형을 엎드려 기다리겠습니다.”
 
174
했다.
 
 
175
表上,睿不省,只催督馬鈞建造高台,安置銅人、承露盤。又降旨廣選天下美女,入芳林園中。 衆官紛紛上表諫諍,睿俱不聽。卻說,曹睿之後毛氏,乃河內人也;先年睿爲平原王時,最相恩愛;及即帝位,立爲後;後睿因寵郭夫人,毛後失寵。郭夫人美而慧,睿甚嬖之,每日取樂,月餘不出宮闥。是歲春三月,芳林園中百花爭放,睿同郭夫人到園中賞玩飲酒。郭夫人曰:“何不請皇後同樂?”睿曰;“若彼在,朕涓滴不能下咽也。”
 
176
표를 올렸지만 조예는 반성하지 않았고, 마균을 독촉해서 높은 대를 건조해서 동인과 승로반을 안치하라고 했다. 또한 교지를 내려서 널리 천하의 미녀를 선발해서 방림원에 들이게 했다. 여러 관리가 잇달아 표를 올려 간쟁했지만 조예는 모두 듣지 않았다. 한편, 조예의 황후 모씨는 하내 사람이었다. 일찍이 조예가 평원왕이던 시절에 서로 매우 사랑했었다. (조예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모씨도) 황후로 책봉됐다. 그 뒤에 조예가 곽 부인을 총애하여, 모 황후는 총애를 잃었다. 곽 부인이 아름답고 총명하니 조예가 몹시 사랑하여 매일 쾌락을 찾아 한 달이 넘도록 그 궁궐을 나오지 않았다. 이해 봄 3월에 방림원에 온갖 꽃이 다퉈서 피어나자 조예가 곽 부인과 함께 방림원에 이르러 즐기며 술을 마셨다. 곽 부인이 말하기를,
 
177
“어찌하여 황후를 불러서 함께 즐기지 않으십니까?”
 
178
하니, 조예가 말하기를,
 
179
“그 사람이 여기에 있으면 내가 (술을) 한 방울도 마실 수가 없소.”
 
180
했다.
 
 
181
遂傳諭宮娥,不許令毛後知道。毛後見睿月餘不入正宮,是日引十餘宮人,來翠花樓上消遣,只聽的樂聲嘹亮,乃問曰:“何處奏樂?”一宮官啟曰:“乃聖上與郭夫人於禦花園中賞花飲酒。”毛後聞之,心中煩惱,回宮安歇。次日,毛皇後乘小車出宮遊玩,正迎見睿於曲廊之間,乃笑曰:“陛下昨遊北園,其樂不淺也!”睿大怒,即命擒昨日侍奉諸人到,叱曰:“昨遊北園,朕禁左右不許使毛後知道,何得又宣露!”喝令宮官將諸侍奉人盡斬之。毛後大驚,回車至宮,睿即降詔賜毛皇後死,立郭夫人爲皇後。朝臣莫敢諫者。
 
182
곧 궁녀들에게 일러서, 모 황후가 알지 못하도록 했다. 모 황후는 조예가 한 달이 넘도록 정궁에 들지 않자, 이날 십여 명의 궁인을 이끌고 취화루 위에서 한가히 보내는데,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므로, 묻기를,
 
183
“어디에서 음악을 연주하오?”
 
184
하니, 한 환관이 아뢰기를,
 
185
“임금님께서 곽 부인과 더불어 어화원에서 꽃을 감상하며 술을 마시고 계십니다.”
 
186
했다. 모 황후가 이를 듣고 마음속으로 번뇌하다가 궁으로 돌아가 쉬었다. 다음날 모 황후가 작은 수레를 타고 궁을 나와서 놀러 가다가 마침 행랑을 도는 데서 조예와 마주쳐 웃으며 말하기를,
 
187
“폐하께서 어제 북원에서 노시던데 그 즐거움이 결코 작지 않았겠지요!”
 
188
하니, 조예가 크게 노하여, 어제 윗사람을 모셨던 사람들을 잡아들여, 꾸짖기를,
 
189
“어제 북원에서 놀 때, 짐이 좌우에게 모 황후가 알지 못하게 하라고 엄명을 내렸거늘, 어째서 또 누설했느냐!”
 
190
하고, 환관에게 소리를 지르고 모셨던 사람들을 모조리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모 황후가 크게 놀라, 수레를 타고 궁궐로 돌아오니, 조예가 즉시 교지를 내려 모 황후에게 사약을 내려 죽이고, 곽 부인을 황후로 삼았다. 조정의 신하들이 감히 간하는 자가 없었다.
 
 
191
忽一日,幽州刺史毋丘儉上表,報稱遼東公孫淵造反,自號爲燕王,改元紹漢元年,建宮殿,立官職,興兵入寇,搖動北方。睿大驚,即聚文武官僚,商議起兵退淵之策。正是:才將土木勞中國,又見幹戈起外方。
 
192
갑자기 어느날, 유주자사 관구검이 표를 올려 보고하기를, 요동의 공손연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연왕이라 일컫고, 연호를 소한 원년으로 고치고, 궁전을 짓고 관직을 만들며 군사를 일으켜 침범하여 북방을 뒤흔든다고 했다. 조예가 크게 놀라서, 즉시 문무 관료를 불러 모아 군사를 일으켜 공손연을 물리칠 대책을 상의했다. 이야말로, 토목 공사로 중국을 괴롭히는데, 국경 밖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구나.
 
 
193
未知何以禦之,且看下文分解。
 
194
어떻게 막아낼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05회 제갈 무후가 비단주머니에 미리 계책을 준비하고 위나라 군주가 승로반을 떼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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