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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31회 조조가 창정에서 본초를 격파하고 현덕이 형주에서 유표에게 의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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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三十一回 曹操倉亭破本初 玄德荊州依劉表
2
제31회 조조가 창정에서 본초를 격파하고 현덕이 형주에서 유표에게 의탁하다.
 
 
3
卻說曹操乘袁紹之敗,整頓軍馬,迤邐追襲。袁紹幅巾單衣,引八百餘騎,奔至黎陽北岸,大將蔣義渠出寨迎接。紹以前事訴與義渠。義渠乃招諭離散之 衆, 衆聞紹在,又皆蟻聚。軍勢複振,議還冀州。軍行之次,夜宿荒山。紹於帳中聞遠遠有哭聲,遂私往聽之。卻是敗軍相聚,訴說喪兄失弟,棄伴亡親之苦,各各捶胸大哭,皆曰:“若聽田豐之言,我等怎遭此禍!”紹大悔曰:“吾不聽田豐之言,兵敗將亡;今回去,有何面目見之耶!”
 
4
각설, 조조가 원소의 패배를 틈타 군마들을 정돈하여 구불구불 계속 추격했다. 원소가 복건에 홑옷 차림으로 8백여 기를 이끌고 여양 북쪽 언덕까지 달아나자 대장 장의거가 영채를 나와 영접했다. 원소가 전날 일을 장의거에게 늘어놓자 장의거가 흩어진 군사들을 불러 다독였다. 군사들이 원소의 소재를 듣고 개미떼처럼 몰려들어 군세를 다시 떨쳐 기주로 돌아갈 것을 의논했다. 행군하다가 밤이 되어 황량한 산에 야영했다. 원소가 장막 안에 있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고 홀로 가서 엿들었다. 패잔병들이 모여 형제를 잃거나 친지를 잃은 아픔을 늘어놓으며 각각 가슴을 치며 크게 울고 있었다. 모두 말하기를,
 
5
“만약 전풍의 말을 들었으면 우리가 어찌 이런 재앙을 만났겠소!”
 
6
했다. 원소가 크게 뉘우쳐 말하기를,
 
7
“내가 전풍의 말을 듣지 않아서 싸움에 지고 장수들을 잃어 지금 돌아가면 무슨 면목으로 그를 만나겠는가?”
 
8
하였다.
 
 
9
次日,上馬正行間,逢紀引軍來接。紹對逢紀曰:“吾不聽田豐之言,致有此敗。吾今歸去,羞見此人。”逢紀因譖曰:“豐在獄中聞主公兵敗,撫掌大笑曰:果不出吾之料!”袁紹大怒曰:“豎儒怎敢笑我!我必殺之!”遂命使者齎寶劍先往冀州獄中殺田豐。卻說田豐在獄中。一日,獄吏來見豐曰:“與別駕賀喜!”豐曰:“何喜可賀?”獄吏曰:“袁將軍大敗而回,君必見重矣。”豐笑曰:“吾今死矣!”獄吏問曰:“人皆爲君喜,君何言死也?”豐曰:“袁將軍外寬而內忌,不念忠誠。若勝而喜,猶能赦我;今戰敗則羞,吾不望生矣。”
 
10
다음날, 말을 타고 가고 있는데 봉기가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영접했다. 원소가 봉기를 보고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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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풍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렇게 패했소. 이제 돌아가서 그를 만나기가 부끄럽소.”
 
12
하니, 봉기가 그로 인해 참소하기를,
 
13
“전풍이 옥중에서 주공의 패전을 듣고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과연 내가 헤아린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구나!’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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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원소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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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선비가 어찌 감히 나를 비웃는가! 내가 반드시 죽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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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침내 사자에게 보검을 주어 기주의 옥중으로 먼저 가서 전풍을 죽이게 했다. 한편, 전풍은 옥중에 있었다. 하루는 옥리가 찾아와서 전풍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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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가께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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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전풍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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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기쁘다고 축하하는가?”
 
20
했다. 옥리가 말하기를,
 
21
“원 장군께서 대패해서 돌아오니 선생께서 틀림없이 중용되겠습니다.”
 
22
하니, 전풍이 웃고 말하기를,
 
23
“나는 이제 죽게 될 것이네!”
 
24
했다. 옥리가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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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모두 선생을 위해 기뻐하는데 어찌 죽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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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전풍이 말하기를,
 
27
“원 장군은 겉으로 관대해도 속으로 시기하고 충성을 생각해주지 않네. 만약 이겨서 기쁘면 오히려 나를 사면해줄지 모르지만, 지금 패전해서 치욕스러워 할테니 나는 살기를 바라지 못하네.”
 
28
하였다.
 
 
29
獄吏未信。忽使者齎劍至,傳袁紹命,欲取田豐之首,獄吏方驚。豐曰:“吾固知必死也。”獄吏皆流淚。豐曰:“大丈夫生於天地間,不識其主而事之,是無智也!今日受死,夫何足惜!”乃自刎於獄中。後人有詩曰:“昨朝沮授軍中失,今日田豐獄內亡。河北棟梁皆折斷,本初焉不喪家邦!”田豐既死,聞者皆爲歎惜。
 
30
옥리가 믿지 못하다가 느닷없이 사자가 보검을 갖고 와서 원소의 명령을 전하고 전풍의 머리를 자르려 하고 나서야 옥리가 비로소 놀랐다. 전풍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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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림없이 죽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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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옥리들이 모두 눈물흘렸다. 전풍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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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부가 천지간에 태어나 그 주공을 알아보지 못하고 섬겼으니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오늘 죽은들 무엇이 애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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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에 옥중에서 자살했다.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35
“어제 아침에는 저수가 군중에서 죽고, 오늘은 전풍이 옥중에서 죽는구나. 하북의 동량들 모두 절단나니, 원본초가 어찌 나라를 잃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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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전풍이 이미 죽자, 들은 사람들이 모두 탄식하고 애석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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袁紹回冀州,心煩意亂,不理政事。其妻劉氏勸立後嗣。紹所生三子長子袁譚字顯思,出守青州;次子袁熙字顯奕,出守幽州;三子袁尚字顯甫,是紹後妻劉氏所出,生得形貌俊偉,紹甚之,因此留在身邊。自官渡兵敗之後,劉氏勸立尚爲後嗣,紹乃與審配、逢紀、辛評、郭圖四人商議、原來審、逢二人,向輔袁尚;辛、郭二人,向輔袁譚;四人各爲其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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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가 기주로 돌아와 마음이 번거롭고 뜻이 어지러워 정사를 처리하지 못했다. 그 아내 유 씨가 후사를 세울 것을 권했다. 원소에게 아들이 셋인데 맏아들 원담은 자를 현사라 하는데나가서 청주를 지키고 있고, 둘째 아들 원희는 자를 현혁이라 하고 나가서 유주를 지켰다. 셋째 아들 원상은 자를 현보라 하는데 바로 원소의 후처 유 씨가 낳았고 생김새가 준수하고 훌륭해서 원소가 몹시 사랑하였고 이로 인해 곁에 두었다. 관도에서 패전한 후에 유씨가 원상을 후사로 세울 것을 권했다. 원소가 곧 심배 봉기 신평 곽도 네 사람과 상의했다. 원래 심배와 봉기 두 사람은 원상을 보필하려 했고, 신평과 곽도 두 사람은 원담을 보필하려 했다. 네 사람 모두 각각 그들 주공을 위했다.
 
 
39
當下袁紹謂四人曰:“今外患未息,內事不可不早定,吾將議立後嗣:長子譚,爲人性剛好殺;次子熙,爲人柔懦難成;三子尚,有英雄之表,禮賢敬士,吾欲立之。公等之意若何?”郭圖曰:“三子之中,譚爲長,今又居外;主公若廢長立幼,此亂萌也。今軍威稍挫,敵兵壓境,豈可複使父子兄弟自相爭亂耶?主公且理會拒敵之策,立嗣之事,毋容多議。”袁紹躊躇未決。忽報袁熙引兵六萬,自幽州來;袁譚引兵五萬,自青州來;外甥高幹亦引兵五萬,自並州來:各至冀州助戰。紹喜,再整人馬來戰曹操。
 
40
그 자리에서 원소가 네 사람에게 말하기를,
 
41
“지금 바깥에 걱정거리가 남아있어서 집안의 일을 어서 정하지 않을 수가 없으므로 후사를 세울 것을 의논하려 하오. 맏아들 담은 사람됨이 성질이 거칠고 죽이기를 좋아하오. 둘째 희는 사람됨이 유약하고 성취하기 어렵소. 셋째 상은 영웅스러운 생김새에 현명한 사람들을 예우하고 선비들을 공경해 내가 그를 후사로 세우려고 하오. 그대들 뜻은 어떻소?”
 
42
하니, 곽도가 말하기를,
 
43
“세 아드님 가운데 담이 맏이인데다 지금 또 밖에 나가 있습니다. 주공께서 만약 맏이를 폐하고 어린 아들을 세우면 이것은 난리를 싹트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군대의 위세가 꺾여서 적병들이 영토를 압박하는데 어찌 다시 부자형제가 서로 다투어 어지럽게 하겠습니까? 주공께서 우선 적병들을 막을 방책을 강구하시고 후사를 세우는 것은 여러 논의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44
하였다. 원소가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하는데, 갑자기 보고가 올라왔다. 원희가 병력 6만을 이끌고 유주에서 오고, 원담이 병력 5만을 이끌어 청주에서 오고, 원소의 생질 고간이 또한 병력 5만을 이끌어 병주에서 와서, 각각 기주에 도착해 싸움을 도우려 한다는 것이다. 원소가 기뻐하고 인마들을 재정비하여 조조와 싸우러 나갔다.
 
 
45
時操引得勝之兵,陳列於河上,有土人簞食壺漿以迎之。操見父老數人,須發盡白,乃命入帳中賜坐,問之曰:“老丈多少年紀?”答曰:“皆近百歲矣。”操曰:“吾軍士驚擾汝鄉,吾甚不安。”父老曰:“桓帝時,有黃星見於楚、宋之分,遼東人殷馗善曉天文,夜宿於此,對老漢等言:黃星見於乾象,正照此間。後五十年,當有真人起於梁沛之間。今以年計之,整整五十年。袁本初重斂於民,民皆怨之。丞相興仁義之兵,吊民伐罪,官渡一戰,破袁紹百萬之 衆,正應當時殷馗之言,兆民可望太平矣。”操笑曰:“何敢當老丈所言?”遂取酒食絹帛賜老人而遣之。號令三軍:“如有下鄉殺人家雞犬者,如殺人之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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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조조가 승전한 병력을 이끌고 황하 가에 진을 펼치자, 주민들이 음식을 싸들고 나와 맞이했다. 조조가 남자 어르신 몇사람을 만났는데 수염이며 머리카락이 모두 하얘서 장막 안으로 불러 자리를 내어주고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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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은 연세가 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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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대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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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백살이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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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51
“우리 군사들이 그대들의 고을을 놀라게 했을까 몹시 불안하오.”
 
52
하니, 남자 어르신들이 말하기를,
 
53
“환제 시절에 황성(별자리 이름)이 초나라와 송나라 지역에 있었습니다. 요동사람 은규가 천문에 밝았는데 밤에 여기에 머물러 자면서 이 늙은이들에게 말하기를,‘황성이 천상에 나타나 여기를 바로 비추고 있소. 50년 뒤에 진인이 대량과 패현 사이에 나타날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햇수로 계산해보니 꼭 50년째입니다. 본초(원소)가 백성들을 크게 수탈하여 백성들이 모두 원망합니다. 승상께서 인의의 군사를 일으켜 백성들을 어루만지시고 죄인을 토벌하러 관도에서 크게 싸워 원소의 백만대군을 격파하여 예전 은규가 한 말 그대로입니다. 만백성이 태평성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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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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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의 말씀을 어찌 감당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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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술과 음식, 비단을 노인들에게 주고 배웅했다. 그리고 삼군에게 호령하기를,
 
57
“촌락에 들어가 백성들 집에서 닭이나 개를 죽인 것도 살인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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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했다.
 
 
59
於是軍民震服。操亦心中暗喜。人報袁紹聚四州之兵,得二三十萬,前至倉亭下寨。操提兵前進,下寨已定。次日,兩軍相對,各布成陣勢。操引諸將出陣,紹亦引三子一甥及文官武將出到陣前。操曰:“本初計窮力盡,何尚不思投降?直待刀臨項上,悔無及矣!”紹大怒,回顧 衆將曰:“誰敢出馬?”袁尚欲於父前逞能,便舞雙刀,飛馬出陣,來往奔馳。操指問 衆將曰:“此何人?”有識者答曰:“此袁紹三子袁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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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군사와 백성들이 두려워하며 복종했다. 조조가 또한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했다. 원소가 4개 주의 병력 2, 3십만을 모아 먼저 창정에 영채를 세웠다는 보고를 받고, 조조가 군대를 거느리고 전진하여 영채를 정했다. 다음날 양쪽 군대가 대치하여 포진하기를 마쳤다. 조조가 장수들을 이끌어 출진하고 원소 역시 세 아들과 생질, 문관과 무장들을 이끌고 진앞에 나왔다. 조조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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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는 꾀도 힘도 다했거늘 어찌 투항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목에 칼을 맞을 때에 이르러서 후회하면 늦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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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원소가 크게 노하여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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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용감히 출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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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원상이 아버지 앞에서 능력을 보여주려고 쌍칼을 춤추듯 휘두르며 말을 몰아 출진하여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조조가 그를 가리키며 장수들에게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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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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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그를 아는 사람이 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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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의 셋째 아들 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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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69
言未畢,一將挺槍早出。操視之,乃徐晃部將史渙也。兩騎相交,不三合,尚撥馬刺斜而走。史渙趕來,袁尚拈弓搭箭,翻身背射,正中史渙左目,墜馬而死。袁紹見子得勝,揮鞭一指,大隊人馬擁將過來,混戰大殺一場,各鳴金收軍還寨。操與諸將商議破紹之策。程昱獻十面埋伏之計,勸操退軍於河上,伏兵十隊,誘紹追至河上,“我軍無退路,必將死戰,可勝紹矣。”
 
70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한 장수가 창을 꼬나잡고 벌써 나섰다. 조조가 바라보니 서황의 부하 장수 사환이었다. 둘이 맞붙어 3합이 못 되어서 원상이 말머리를 옆으로 돌려 달아났다. 사환이 뒤쫓자 원상이 활을 들어 화살을 매겨서 몸을 돌려 등 뒤로 쏘았다. 사환이 왼눈을 바로 맞아 낙마해 죽었다. 원소가 아들이 이긴 것을 보고 채찍을 휘둘러 지시하자 많은 인마들이 장수를 호위해 몰려와서, 혼전하여 한바탕 크게 싸운 뒤 각각 징을 쳐 군사들을 거둬 영채로 돌아갔다. 조조가 장수들과 함께 원소를 깰 계책을 상의했다. 정욱이 십면매복 (온통 복병을 두는 것)의 계책을 바치는데 조조에게 황하 가로 퇴각하되 10개 부대를 매복해 원소를 황하 가까지 유인할 것을 권하기를,
 
71
“아군에게 퇴로가 없어지면 틀림없이 죽을 각오로 싸울테니 원소에게 이길 수 있습니다.”
 
72
라고 했다.
 
 
73
操然其計。左右各分五隊。左:一隊夏侯惇,二隊張遼,三隊李典,四隊樂進,五隊夏侯淵;右:一隊曹洪,二隊張郃,三隊徐晃,四隊於禁,五隊高覽。中軍許褚爲先鋒。次日,十隊先進,埋伏左右已定。至半夜,操令許褚引兵前進,偽作劫寨之勢。袁紹五寨人馬,一齊俱起。許褚回軍便走。袁紹引軍趕來,喊聲不絕;比及天明,趕至河上。曹軍無去路,操大呼曰:“前無去路,諸軍何不死戰?” 衆軍回身奮力向前。許褚飛馬當先,力斬十數將。袁軍大亂。袁紹退軍急回,背後曹軍趕來。
 
74
조조가 그 계책을 그럴듯하다고 여겨, 좌우로 각각 다섯 부대로 나누었다. 왼쪽 1대는 하후돈, 2대는 장요, 3대는 이전, 4대는 악진, 5대는 하후연이다. 오른쪽 1대는 조홍, 2대는 장합, 3대는 서황, 4대는 우금, 5대는 고람이다. 중군의 허자가 선봉이 되었다. 다음날 10개 부대가 먼저 가서 좌우에 매복을 마쳤다. 한밤중이 되자, 조조가 허저에게 명령하여 병력을 이끌고 전진해서 거짓으로 적진을 공격하는 척했다. 원소의 다섯 영채에서 인마들이 일제히 일어나자 허저가 군사들을 돌려서 달아났다. 원소가 군사들을 이끌고 뒤쫓아서 함성이 그치지 않았다. 새벽에 이르러 황하 가까지 뒤쫓아 조조 군사들이 달아날 길이 없었다. 조조가 크게 외치기를,
 
75
“우리 앞에 달아날 길이 없다. 군사들은 어찌하여 죽을 각오로 싸우지 않는가?”
 
76
하니, 모든 군사들이 몸을 돌려 힘을 떨쳐 전진했다. 허저가 말을 내달리며 앞장서서 적장 십수 명을 참했다. 원소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원소가 퇴각하여 급히 돌아가는데 배후에서 조조의 군사들이 뒤쫓았다.
 
 
77
正行間:一聲鼓響,左邊夏侯淵,右邊高覽,兩軍沖出。袁紹聚三子一甥,死沖血路奔走。又行不到十裏,左邊樂進,右邊於禁殺出,殺得袁軍屍橫遍野,血流成渠。又行不到數裏,左邊李典,右邊徐晃,兩軍截殺一陣。袁紹父子膽喪心驚,奔入舊寨。令三軍造飯,方欲待食,左邊張遼,右邊張郃,徑來沖寨。紹慌上馬,前奔倉亭。人馬困乏,欲待歇息,後面曹操大軍趕來,袁紹舍命而走。
 
78
달아나고 있는데 북소리가 한바탕 울리더니 왼쪽에서 하후연이, 오른쪽에서 고람이 이끄는 두 부대가 치고 나왔다. 원소가 세 아들, 생질과 함께 죽기 살기로 혈로를 뚫어 달아났다. 다시 10리를 못 가서 왼쪽에서 악진, 오른쪽에서 우금이 튀어나와 원소 군대를 무찔러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고 피가 흘러 도랑을 이루었다. 다시 몇 리를 못 가, 왼쪽에서 이전, 오른쪽에서 서황의 두 부대가 가로막고 한바탕 무찔렀다. 원소 부자가 간이 떨어지고 가슴이 놀라 영채로 도망쳐 들어가서 삼군에 밥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밥을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왼쪽에서 장요, 오른쪽에서 장합이 내달려와 영채를 공격했다. 원소가 황급히 말에 올라 창정으로 먼저 달아났다. 인마들이 기진맥진해 쉬려 하는 참에 뒤쪽에서 조조의 대군이 뒤쫓아오니, 원소가 죽기 살기로 달아났다.
 
 
79
正行之間,右邊曹洪,左邊夏侯惇,擋住去路。紹大呼曰:“若不決死戰,必爲所擒矣!”奮力沖突,得脫重圍。袁熙、高幹皆被箭傷。軍馬死亡殆盡。紹抱三子痛哭一場,不覺昏倒。 衆人急救,紹口吐鮮血不止,歎曰:“吾自曆戰數十場,不意今日狼狽至此!此天喪吾也!汝等各回本州,誓與曹賊一決雌雄!”便教辛評、郭圖火急隨袁譚前往青州整頓,恐曹操犯境;令袁熙仍回幽州,高幹仍回並州:各去收拾人馬,以備調用。袁紹引袁尚等入冀州養病,令尚與審配、逢紀暫掌軍事。
 
80
한창 달아나고 있는데 왼쪽에서 조홍, 오른쪽에서 하후돈이 갈 길을 막아섰다. 원소가 크게 외치기를,
 
81
“죽은 각오로 싸우지 않으면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82
하니, 힘을 떨쳐 충돌해서 두터운 포위를 뚫어 탈출했다. 원희와 고간 둘다 화살을 맞아 다쳤다. 군사와 말들이 거의 다 죽었다. 원소가 세 아들을 껴안아 한바탕 통곡하다가 깜박 혼절해 쓰러졌다. 사람들이 급히 구하자 원소가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원소가 탄식하기를,
 
83
“내가 여태 수십 차례를 싸웠지만 오늘 이렇게 낭패를 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버린 것이다! 너희는 각각 근거지로 돌아가 맹세코 조조 도적놈과 자웅을 겨루어라!”
 
84
하였다. 그리고 신평과 곽도에게 화급히 원담을 따라 먼저 청주로 가서 정돈하여 조조의 침공에 대비케 했다. 원희도 다시 유주로 돌아가게 하고, 고간도 다시 병주로 돌아가서 각각 인마들을 수습해 동원에 대비하게 했다. 원소가 원상 등을 이끌어 기주로 들어가 요양하고 원상과 심배, 봉기에게 잠시 군사 업무를 관장하게 했다.
 
 
85
卻說曹操自倉亭大勝,重賞三軍;令人探察冀州虛實。細作回報:“紹臥病在床。袁尚、審配緊守城池。袁譚,袁熙、高幹皆回本州。” 衆皆勸操急攻之。操曰:“冀州糧食極廣,審配又有機謀,未可急拔。現今禾稼在田,恐廢民業,姑待秋成後取之未晚。”正議間,忽荀彧有書到,報說:“劉備在汝南得劉辟、龔都數萬之 衆。聞丞相提軍出征河北,乃令劉辟守汝南,備親自引兵乘虛來攻許昌。丞相可速回軍禦之。”操大驚,留曹洪屯兵河上,虛張聲勢。操自提大兵往汝南來迎劉備。
 
86
한편, 조조가 창정에서 대승한 뒤 삼군을 크게 포상하고 사람을 시켜 기주의 허실을 알아보게 했다. 세작(간첩)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87
“원소는 와병 중이고, 원상과 심배가 성지를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원담, 원희, 고간은 모두 근거지로 돌아갔습니다.”
 
88
했다. 사람들이 모두 조조에게 서둘러 공격하라고 권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89
“기주는 식량이 극히 많고 심배 또한 계략이 있어서 아직 급히 함락할 수는 없소. 지금 곡식이 논밭에서 자라고 있어 백성들의 생업을 해칠까 두려우니 잠시 가을걷이를 기다렸다가 공격해도 늦지 않소.”
 
90
했다. 의논하고 있는데 순욱의 서찰이 도착했다. (서찰로) 보고하여 이르기를,
 
91
“유비가 여남에서 유벽과 공도의 무리 수만 명을 얻었습니다. (유비가) 승상께서 군사들을 거느려 하북으로 출정한 것을 듣고 유벽에게 여남을 지키게 하는 한편, 스스로 병력을 이끌어 빈틈을 타서 허창을 공격하려 합니다. 승상께서 어서 회군하여 막으십시오.”
 
92
하였다. 조조가 크게 놀라 조홍을 남겨 황하 가에 주둔하여 허장성세를 부리게 했다. 조조 스스로는 대병력을 이끌고 여남으로 유비를 맞아 싸우러 갔다.
 
 
93
卻說玄德與關、張、趙雲等,引兵欲襲許都。行近穰山地面,正遇曹兵殺來,玄德便於穰山下寨,軍分三隊:雲長屯兵於東南角上,張飛屯兵於西南角上,玄德與趙雲於正南立寨。曹操兵至,玄德鼓噪而出。操布成陣勢,叫玄德打話。玄德出馬於門旗下。操以鞭指罵曰:“吾待汝爲上賓,汝何背義忘恩?”玄德曰:“汝托名漢相,實爲國賊!吾乃漢室宗親,奉天子密詔,來討反賊!”遂於馬上朗誦衣帶詔。
 
94
한편, 현덕이 관우 장비 조운 등과 함께 병력을 이끌어 허도를 습격하려 했다. 양산 지역 가까이 이르러 조조 병력이 들이닥치는 것을 만나서 현덕은 양산에 영채를 세웠다. 군사들을 세 부대로 나누어 운장이 동남쪽에 주둔하고 장비가 서남쪽에 주둔하고 현덕과 조운이 정남쪽에 진지를 세웠다. 조조 병력이 이르자 현덕이 북을 울리며 출격했다. 조조가 포진을 마치고 현덕을 소리쳐 불러서 이야기하고, 현덕은 문기 아래에 말을 타고 나섰다. 조조가 채찍으로 가리켜며 욕하기를,
 
95
“내가 너를 상빈으로 대했거늘 너는 어찌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었느냐?”
 
96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97
“네가 한나라 승상이라는 이름을 가탁하였으나 실은 국가의 역적이다! 내가 한실종친으로 천자의 밀조를 받들어 반적을 토벌하러 왔다!”
 
98
하였다. 그리고는 말 위에서 의대의 밀조(천자의 비밀조서)를 낭송했다.
 
 
99
操大怒,教許褚出戰。玄德背後趙雲挺槍出馬。二將相交三十合,不分勝負。忽然喊聲大震,東南角上,雲長沖突而來;西南角上,張飛引軍沖突而來。三處一齊掩殺。曹軍遠來疲困,不能抵當,大敗而走。玄德得勝回營。次日,又使趙雲搦戰。操兵旬日不出。玄德再使張飛搦戰,操兵亦不出。玄德愈疑。忽報龔都運糧至,被曹軍圍住,玄德急令張飛去救。忽又報夏侯惇引軍抄背後徑取汝南,玄德大驚曰:“若如此,吾前後受敵,無所歸矣!”急遣雲長救之。兩軍皆去。
 
100
조조가 크게 노하여 허저에게 출전하게 했다. 현덕의 뒤에서 조운이 창을 꼬나잡고 출마했다. 두 장수가 붙어서 30합이 되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홀연히 함성이 크게 일더니 동남쪽에서 운장이 충돌해 오고, 서남쪽에서 장비가 군사들을 이끌어 충돌해 왔다. 세 군데에서 일제히 덮치니, 조조 군대가 멀리서 왔으므로 피곤하여 막아내지 못하고 대패해 달아났다. 현덕이 이기고 영채로 돌아왔다. 다음날 다시 조운을 시켜서 싸움을 걸게 했다. 조조 병력은 열흘 동안 나오지 않았다. 현덕이 다시 장비를 보내 싸움을 걸지만 조조 병력이 역시 나오지 않았다. 현덕이 더욱 의심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공도가 군량을 운반하다 조조 군사들에게 포위됐다고 하여, 현덕은 급히 장비에게 구원하라 명령했다. 또한 하후돈이 군사들을 이끌고 배후를 공격해 곧장 여남을 취한다는 급보가 전해져 현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101
“이렇다면 우리는 앞뒤로 적병을 맞아서 돌아갈 곳이 없게 된다!”
 
102
하고, 급히 운장에게 구원하게 했다. 양쪽 부대가 모두 떠났다.
 
 
103
不一日,飛馬來報夏侯惇已打破汝南,劉辟棄城而走,雲長現今被圍。玄德大驚。又報張飛去救龔都,也被圍住了。玄德急欲回兵,又恐操兵後襲。忽報寨外許褚搦戰。玄德不敢出戰,候至天黑,教軍士飽餐,步軍先起,馬軍後隨,寨中虛傳更點。玄德等離寨約行數裏,轉過土山,火把齊明,山頭上大呼曰:“休教走了劉備!丞相在此專等!”玄德慌尋走路。趙雲曰:“主公勿憂,但跟某來。”趙雲挺槍躍馬,殺開條路,玄德掣雙股劍後隨。
 
104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내닫는 전마로 급보를 전하기를, 하후돈이 이미 여남을 격파해 유벽은 성을 버리고 달아나고 운장은 지금 포위돼 있다고 했다. 현덕이 크게 놀랐다. 다시 보고하기를, 공도를 구하러 간 장비 역시 포위돼 있다고 했다. 현덕이 서둘러 군대를 돌리려 하지만 조조 병력이 배후를 습격할까 두려웠다. 갑자기 영채 밖에 허저가 와서 싸움을 건다고 했지만, 현덕이 감히 출전하지 못했다.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서 군사들을 배불리 먹인 뒤 보병을 먼저 출발하게 하고 기병을 뒤따르게 하여 영채 안에서는 거짓으로 점호하는 척했다. 현덕 등이 영채를 떠나 몇 리를 가서 흙산을 돌아 지나는데 횃불이 한꺼번에 타오르고 산꼭대기에서 크게 외치기를,
 
105
“유비는 달아나지 말라! 승상께서 여기서 기다리고 계셨다!”
 
106
라고 했다. 현덕이 황급히 달아날 길을 찾았다. 조운이 말하기를,
 
107
“주공은 걱정 마십시오! 제게 바짝 붙으십시오!”
 
108
했다. 조운이 창을 꼬나쥐고 말을 내달려 쳐나가며 한줄기 길을 뚫으니 현덕이 쌍고검을 쥐고 뒤따랐다.
 
 
109
正戰間。許褚追至,與趙雲力戰。背後於禁、李典又到。玄德見勢危,落荒而走。聽得背後喊聲漸遠,玄德望深山僻路,單馬逃生。捱到天明,側首一彪軍沖出。玄德大驚,視之,乃劉辟引敗軍千餘騎,護送玄德家小前來;孫乾。簡雍,糜芳亦至,訴說:“夏侯惇軍勢甚銳,因此棄城而走。曹兵趕來,幸得雲長擋住,因此得脫。”玄德曰:“不知雲長今在何處?”劉辟曰:“將軍且行,卻再理會。”
 
110
바로 싸우면서 나아가는 사이에 허저가 따라붙어 조운과 힘껏 싸웠다. 뒤에서 우금과 악전도 당도했다. 현덕이 형세가 위급한 것을 보고 큰길을 벗어나 달아났다. 뒤에서 들리는 함성이 점점 멀어지고 현덕은 깊은 산속 외딴 길로 달아나 홀로 말을 몰아 도망쳐 살아났다. 새벽이 가까웠는데 옆에서 한 떼의 군사들이 튀어나왔다. 현덕이 크게 놀라 바라보니 다름아닌 유벽이 패잔군 1천여 기를 이끌어 현덕 식구를 호송해 오고 있었다. 손건, 간옹, 미방도 도착해 하소연하기를,
 
111
“하후돈의 군세가 매우 날카로워 그로 인해 성을 버려 달아났습니다. 조조 병력이 뒤쫓는 걸 다행히 운장이 가로막아 벗어나게 됐습니다.”
 
112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113
“운장이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오?”
 
114
하니, 유벽이 말하기를,
 
115
“장군께서 우선 출발하십시오. 그건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116
하였다.
 
 
117
行到數裏,一棒鼓響,前面擁出一彪人馬。當先大將,乃是張郃,大叫:“劉備快下馬受降!”玄德方欲退後,只見山頭上紅旗磨動,一軍從山塢內擁出,爲首大將,乃高覽也。玄德兩頭無路,仰天大呼曰:“天何使我受此窘極耶!事勢至此,不如就死!”欲拔劍自刎,劉辟急止之曰:“容某死戰,奪路救君。”言訖,便來與高覽交鋒。戰不三合,被高覽一刀砍於馬下。
 
118
몇 리를 가자 북소리가 한 차례 울리더니 앞쪽에 한 떼의 인마가 밀어닥친다. 앞장선 대장은 바로 장합으로 크게 외치기를,
 
119
“유비는 빨리 말에서 내려 투항하라!”
 
120
했다. 현덕이 막 뒤로 물러서려는데 산꼭대기 위에서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1군이 산속 으슥한 데에서 쏟아져 나왔다. 우두머리 대장은 바로 고람이었다. 현덕이 양쪽으로 길이 막히자 하늘을 우러러 크게 외치기를,
 
121
“하늘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가? 사세가 이렇다면 죽는 것만 못하리라!”
 
122
하고, 검을 뽑아 자살하려 했다. 유벽이 급히 말려 말하기를,
 
123
“제가 죽기로 싸워서 길을 뚫어 사군을 구하겠습니다.”
 
124
하였다. 말을 마치고 달려가 고람과 교전했다. 싸운 지 3합을 넘기지 못하고 고람의 한칼에 베여서 말 아래로 떨어졌다.
 
 
125
玄德正慌,方欲自戰,高覽後軍忽然自亂,一將沖陣而來,槍起處,高覽翻身落馬。視之,乃趙雲也。玄德大喜。雲縱馬挺槍,殺散後隊,又來前軍獨戰張郃。郃與雲戰三十餘合,撥馬敗走。雲乘勢沖殺,卻被郃兵守住山隘,路窄不得出。正奪路間,只見雲長、關平、周倉引三百軍到。兩下相攻,殺退張郃。各出隘口,占住山險下寨。玄德使雲長尋覓張飛。原來張飛去救龔都,龔都已被夏侯淵所殺;飛奮力殺退夏侯淵,迤邐趕去,卻被樂進引軍圍住。雲長路逢敗軍,尋蹤而去,殺退樂進,與飛同回見玄德。
 
126
현덕이 황급하여 막 직접 싸우려는데 고람의 후군이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한 장수가 쳐들어오는데 창을 휘두르자 고람이 고꾸라져 말에서 떨어졌다. 바라보니 바로 조운이었다. 현덕이 크게 기뻐했다. 조운이 말을 내달려 창을 꼬나쥐어 뒤쪽 군사들을 무찔러 흩어버리고 다시 앞으로 내달려 홀로 장합과 싸웠다. 장합이 조운과 30여 합을 싸우다가 말머리를 돌려 패주했다. 조운이 기세를 타서 쳐부수는데, 장합의 병사들이 산골짜기를 가로막는데 길이 좁아 탈출할 수가 없었다. 길을 뚫고 있는 사이에, 운장, 관평, 주창이 3백 군마를 이끌어 도착했다. 양쪽에서 협공하여 장합을 무찔러 쫓아버렸다. 각각 산 어귀를 빠져나와 산세가 험한 곳에 자리잡아 진을 쳤다. 현덕이 운장에게 장비를 찾아보게 했다. 원래 장비는 공도를 구하러 갔지만 공도는 이미 하후연에게 죽임을 당했다. 장비가 힘을 떨쳐 하후연을 무찔러 구불구불 뒤쫓다가 도리어 악진의 병사들에게 포위를 당했다. 운장이 길에서 패잔병들을 만나 자취를 찾아가서 악진을 무찔러 쫓아버리고 장비와 함께 돌아와 현덕을 만났다.
 
 
127
人報曹軍大隊趕來,玄德教孫乾等保護老小先行。玄德與關、張、趙雲在後,且戰且走。操見玄德去遠,收軍不趕。玄德敗軍不滿一千,狼狽而奔。前至一江,喚土人問之,乃漢江也。玄德權且安營。土人知是玄德,奉獻羊酒,乃聚飲於沙灘之上。玄德歎曰:“諸君皆有王佐之才,不幸跟隨劉備。備之命窘,累及諸君。今日身無立錐,誠恐有誤諸君。君等何不棄備而投明主,以取功名乎?”
 
128
조조의 대군이 뒤쫓는다는 보고가 들어오므로 현덕은 손건 등에게 식구를 보호하여 먼저 가게 했다. 현덕이 관우, 장비, 조운과 함께 뒤에서 싸우다가 달아나기를 되풀이했다. 현덕이 멀리 달아난 것을 보고, 조조가 군사들을 거두어 뒤쫓지 않았다. 현덕의 패잔병이 1천 명이 되지 않아 낭패하여 달아났다. 어느 강 가에 이르러 지역 주민을 불러 물으니 바로 한강이라고 했다. 현덕이 잠시 주둔했다. 주민들이 현덕을 알아보고 양고기와 술을 바쳐서 강가 모래밭에서 모여 술을 마셨다. 현덕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129
“그대들은 모두 왕을 도울 만한 재주를 지녔는데 불행히 나를 따라다니고 있소. 내 운명이 군색하여 그대들에게도 누를 끼치오. 오늘날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어 참으로 그대들을 그르칠까 두렵소.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고 밝은 주공을 찾아 공명을 세우려 하지 않소?”
 
130
했다.
 
 
131
衆皆掩面而哭。雲長曰:“兄言差矣。昔日高祖與項羽爭天下,數敗於羽;後九裏山一戰成功,而開四百年基業。勝負兵家之常,何可自隳其志!”孫乾曰:“成敗有時,不可喪志。此離荊州不遠。劉景升坐鎮九郡,兵強糧足,更且與公皆漢室宗親,何不往投之?”玄德曰:“但恐不容耳。”乾曰:“某願先往說之,使景升出境而迎主公”
 
132
모두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운장이 말하기를,
 
133
“형장의 말씀이 틀렸소. 옛날 고조 황제께서 항우와 천하를 다투어 몇번이나 항우에게 패했지만, 뒷날 구리산 싸움에서 한번 성공하여 사백년 왕업의 토대를 여셨소. 이기고 지는 건 병가에서 흔한 일인데 어찌 스스로 뜻을 꺾겠소?”
 
134
하니, 손건이 말하기를,
 
135
“성공과 실패에는 때가 있으니 상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형주까지 멀지 않습니다. 유경승(유표의 자)께서 아홉 군을 장악하여 병력이 강하고 식량이 넉넉한데다 주공과 함께 한실의 종친인데 어찌 그를 찾아가시지 않습니까?”
 
136
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137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이오.”
 
138
하니, 손건이 말하기를,
 
139
“제가 먼저 가서 설득하여 유경승으로 하여금 경계에 나와 주공을 영접하게 하겠습니다.”
 
140
했다.
 
 
141
玄德大喜,便令孫乾星夜往荊州。到郡入見劉表,禮畢,劉表問曰:“公從玄德,何故至此?”乾曰:“劉使君天下英雄,雖兵微將寡,而志欲匡扶社稷。汝南劉辟、龔都素無親故,亦以死報之。明公與使君,同爲漢室之胄;今使君新敗,欲往江東投孫仲謀。乾僭言曰:不可背親而向疏。荊州劉將軍禮賢下士,士歸之如水之投東,何況同宗乎?因此使君特使乾先來拜白。惟明公命之。”
 
142
현덕이 크게 기뻐하여 손건에게 밤새 형주로 가게 했다. 손건이 고을에 도착하여 유표를 만나 인사를 마치니 유표가 묻기를,
 
143
“그대는 현덕을 따르는데 무슨 까닭으로 여기에 왔소?”
 
144
했다. 손건이 말하기를,
 
145
“유사군께서는 천하영웅이십니다. 비록 병력은 미미하고 따르는 장수는 적더라도 그 뜻은 종묘사직을 바로잡는 데 있습니다. 여남 땅 유벽과 공도가 평소 친하지 않았는데도 죽음으로써 그에게 보답하였습니다. 명공과 사군은 모두 한실의 후예이십니다. 지금 사군께서 방금 패하시고 강동의 손중모를 찾아가려 하였습니다. 제가 외람되이 말하기를,‘친지를 버리고 남을 찾아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형주의 유장군께서 어진 이를 예우하고 몸을 낮춰 선비들을 사귀어 선비들이 물이 동쪽으로 흐르듯 그에게 귀의하고 있는데 하물며 같은 종친을 어찌 대우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군께서 특별히 저를 먼저 보내 인사드리오니 명공께서 명을 내려주십시오.”
 
146
하였다.
 
 
147
表大喜曰:“玄德,吾弟也。久欲相會而不可得。今肯惠顧,實爲幸甚!”蔡瑁譖曰:“不可。劉備先從呂布,後事曹操,近投袁紹,皆不克終,足可見其爲人。今若納之,曹操必加兵於我,枉動幹戈。不如斬孫乾之首,以獻曹操,操必重待主公也。”孫乾正色曰:“乾非懼死之人也。劉使君忠心爲國,非曹操、袁紹、呂布等比。前此相從,不得已也。今聞劉將軍漢朝苗裔,誼切同宗,故千裏相投。爾何獻讒而妒賢如此耶?”
 
148
유표가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149
“현덕은 내 아우요. 오래 전부터 만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소. 지금 찾아온다니 참으로 다행이오.”
 
150
하니, 채모가 헐띁어 말하기를,
 
151
“안 됩니다. 유비는 먼저 여포를 따르다가 그뒤 조조를 섬겼고, 근간에 원소에게 갔지만 모두 끝까지 있지 않았으니 그 사람됨을 알고도 남습니다. 지금 그를 받아들이면 조조가 우리에게 병력을 동원하여 부질없이 전쟁이 벌어집니다. 손건의 머리를 베어 조조에게 바쳐 조조가 주공을 무겁게 대우하게 만드는 것만 못합니다.”
 
152
하였다. 손건이 정색하여 말하기를,
 
153
“나는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 아니오. 유사군께서 충심으로 나라를 위하시니 조조, 원소, 여포 같은 무리가 아니오. 예전에 그들과 상종한 건 부득이해서요, 지금 유장군께서 한나라 후손이라 듣고 같은 종친이라 여기는 마음이 절실하여 천릿길을 찾아왔소. 그대는 어찌 이다지도 어진 이를 모함하고 시기하오!”
 
154
했다.
 
 
155
劉表聞言,乃叱蔡瑁曰:“吾主意已定,汝勿多言。”蔡瑁慚恨而出,劉表遂命孫乾先往報玄德,一面親自出郭三十裏迎接。玄德見表,執禮甚恭。表亦相待甚厚。玄德引關、張等拜見劉表,表遂與玄德等同入荊州,分撥院宅居住。卻說曹操探知玄德已往荊州投奔劉表,便欲引兵攻之。程昱曰:“袁紹未除,而遽攻荊襄,倘袁紹從北而起,勝負未可知矣。不如還兵許都,養軍蓄銳,待來年春暖,然後引兵先破袁紹,後取荊襄:南北之利,一舉可收也。”
 
156
유표가 그 말을 듣고 채모를 꾸짖기를,
 
157
“내 뜻은 이미 정해졌으니 여러말 하지 마라.”
 
158
하였다. 채모가 부끄럽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나갔다. 유표가 손건에게 먼저 가서 현덕에게 알리게 하는 한편, 스스로 성곽 밖으로 30리를 나가 영접했다. 현덕이 유표를 만나 매우 공손하게 예를 다했다. 유표 역시 매우 두텁게 대우했다. 현덕이 관우, 장비 등을 이끌어 유표에게 인사시켰다. 유표가 현덕과 함께 형주로 들어가 집을 내어주어 살게 했다. 한편, 현덕이 형주로 가서 유표에게 의탁한 것을 탐지한 조조가 병력을 이끌어 공격하려 했다. 정욱이 말하기를,
 
159
“원소를 아직 없애지 못한 채 서둘러 형주와 양양 땅을 치다가 만약 원소가 북쪽에서 군사를 일으키면 승부를 알 수 없게 됩니다. 허도로 철군하여 병력을 기르고 예기를 축적한 다음에, 내년 봄날 따뜻한 때를 기다려 병력을 이끌어 먼저 원소를 격파한 뒤에 형주와 양양을 취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면 남북에서 승리를 한번에 거둘 수 있습니다.”
 
160
했다.
 
 
161
操然其言,遂提兵回許都。至建安七年,春正月,操複商議興兵。先差夏侯惇、滿寵鎮守汝南,以拒劉表;留曹仁、荀彧守許都:親統大軍前赴官渡屯紥。且說袁紹自舊歲感冒吐血症候,今方稍愈,商議欲攻許都。審配諫曰:“舊歲官渡,倉亭之敗,軍心未振;尚當深溝高壘,以養軍民之力。”正議間,忽報曹操進兵官渡,來攻冀州。紹曰:“若候兵臨城下,將至壕邊,然後拒敵,事已遲矣。吾當自領大軍出迎。”袁尚曰:“父親病體未痊,不可遠征。兒願提兵前去迎敵。”紹許之,遂使人往青州取袁譚,幽州取袁熙,並州取高幹:四路同破曹操。正是:才向汝南鳴戰鼓,又從冀北動征鼙。
 
162
조조가 그렇게 여겨 허도로 철군했다. 건안 7년 봄, 음력 정월, 조조가 다시 출병을 상의했다. 먼저 하후돈과 만총을 보내 여남을 수비하여 유표를 막게 했다. 그리고 조인과 순욱을 남겨 허도를 지키게 했다. 조조가 스스로 대군을 통솔하여 관도로 가서 주둔했다. 한편, 원소가 지난해 감기와 토혈의 증상에서 이제 조금씩 낫자 상의해서 허도를 공격하려 했다. 심배가 간하기를,
 
163
“지난해 관도와 창정에서 패하여 아직 군심이 부진하니 지금은 마땅히 해자를 깊게 파고 보루를 높여 군대와 백성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164
했다. 그렇게 의논하고 있는데, 급보가 날아들어, 조조가 관도로 진군하여 익주를 치러 온다고 했다. 원소가 말하기를,
 
165
“만약 적병을 성밑에 오도록 기다려서 적병이 해자 가에 다다른 뒤 막으려 한다면, 일이 이미 늦게 될 것이오. 내가 몸소 대군을 거느리고 나가서 맞이 싸워야겠소.”
 
166
하였다. 원상이 말하기를,
 
167
“부친께서 병든 몸이 아직 낫지 않으셔서 멀리 출정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병력을 거느려 먼저 가서 적병을 맞아 싸우고 싶습니다.”
 
168
하니, 원소가 허락하여 사람을 보내 청주에서 원담, 유주에서 원희, 병주에서 고간이 힘을 합쳐 네갈래로 함께 조조를 격파하려 했다. 이야말로, 방금 여남에서 전쟁의 북소리 그치자 다시 기주 북쪽에서 싸움의 북소리가 울리는구나.
 
 
169
未知勝負如何,且聽下文分解。
 
170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31회 조조가 창정에서 본초를 격파하고 현덕이 형주에서 유표에게 의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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